정호승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2016. 6. 11. 18:54책/시집

친구가 시집을 읽네요.

저도 따라서 시집을 읽어 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시를 읽은 적이  거의 없네요.

 

첫 번째 시집은 정호승 시인의 <이 짧은 시간 동안(2004)>입니다.

10년도 더 전에 쓴 시들입니다.

시인이 1950년생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50대 초반의 시겠지요.

 

1. 제목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위를 걸으며>라는 시에서 딴 것으로 보이네요.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입니다.

 

2. 시를 읽다 보니 그의 시를 시각화하게 됩니다.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보입니다.

인간의 푸른 눈동자가 달린 나뭇잎('시각장애인 식물원'),

전기구이 오븐 속에 가부좌한 통닭('통닭'),

사람이 되는 연꽃('연꽃구경'),

냉장고 문를 여니 펼쳐지는 바다('노모의 텔레비전'),

물 속의 물고기 불국사('불국사')

냉장고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노인('노인들의 냉장고')

 

화가가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듯

시인도 비현실적 이미지를 가져다 시를 쓸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3. 시어로 종교와 관련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네요.

부처, 절, 극락전, 연꽃, 스님, 다비, 탑, 예수, 십자가, 성당, 미사, 수녀, 추기경, 기도 등

시인이 특정종교의 교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것에 관심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4. 죄책감, 회한, 참회, 용서를 담은 내용의 시가 적지 않아요.

'시립 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 '나의 수미산', '가시', '참회', '마음에 집이 없으면'...

특히 발 없는 새로 윤회하리라는 '참회'는 인상적입니다.

칼을 버린다, 독을 버린다는 구절도 표현도 같은 맥락 속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생을 돌아보는 시인의 마음이 보입니다.

 

5. 어머니의 죽음도 시인의 시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빈손', '무덤을 지키는 개' 등이 바로 어머니의 죽음으로 태어난 시들이겠지요.

 

시인의 시 속에는 죽음과 관련한 시가 많습니다.

니이가 들어가고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을 맞고 하는 상황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죽음을 회피하고 무시하고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직면하게 될 때가 있는 것이지요.

시인은 회피하지 않고 시에 죽음을 담아 본 것 같네요.

 

6. 시인은 시('어린 낙타', '막다른 골목', '무릎') 속에 '낙타와 사막'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이미지를 시어로 채택해서인지 더 눈에 띱니다.

 

더운 날 오후 잠깐, 시를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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