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라카리에르의 [길을 걸으며], 프랑스 땅 걷기

2017. 6. 19. 18:22책/걷기

자크 라카리에르의 [길을 걸으며]는 프랑스에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에 영향을 준 책으로 평가받는 모양인데, 

[길을 걸으며]는 그 어떤 걷기 소재의 책보다 문학적입니다. 


70년대 초 프랑스 동북부에서 남쪽 해안까지 가로질러 혼자 걸으며 글을 썼던 라카리에르,

그의 책은 단순히 걸으며 느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표현한 바 있듯이 걸었던 행위를 다시 글쓰기를 하면서 글쓰기의 시간으로 재구성한 것이지요.

글을 쓸 당시의 기억을 쓴 것입니다. 

이 기억은 걷고 있던 당시, 걷고 바로 메모했던 당시와도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걸었던 경험을 시간이 지나 떠올렸을 때 그 당시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이 기억 속에서 오히려 더 생생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이해할 수 있답니다.


아무튼 70년대초는 60년대 후반 프랑스에 자동차 보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라 주요이동수단이 걷기에서 차타기로 바뀐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홀로 걷는 사람에게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할 때라는군요.

저자도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런 와중에도 장거리, 긴 시간을 사색하며 보고 느끼며 글을 쓰면서 걸었던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의 산주변에 둘레길을 만들어둔 것처럼, 프랑스도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길들이 곳곳에 촘촘히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걷는 것이 70년대만큼 의심을 사는 일은 아닐 듯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땅을 가로지르며 장기간 홀로 걷는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요.

프랑스나 한국이나 바쁜 생활 속에 그렇게 어슬렁거리며 길을 걷는 사람이 흔하기 어렵겠지요.

걷기가 의심받는 시절에 홀로 장거리를 오랜 시간 걸었던 그의 글이 반짝이고 제 마음에 와 닿네요.


개인적으로 그의 글이 좋았던 것은 그가 들려주는 프랑스어, 아니 프랑스 지방어와 관련한 이야기, 

프랑스 시골마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땅보다 프랑스에서 가 본 곳, 걸어본 곳이 더 많아서인지 ... 


물론 프랑스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도 그의 서정성과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을 겁니다.

동물, 식물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간밤에 두 갈래 길에서 만난 잠자던 살무사와 오베르비의 광활한 숲에서 마주쳤던 또 다른 살무사 

그리고 내가 보았던 또 다른 수많은 곤충들, 그들의 행진, 식사, 사랑까지도 걷는다는 건 무엇보다도 

멈추어 바라보고 시간을, 인간의 시간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안다는 것이고, 

거미의 인내심을 혹은 살무사들의 단잠을 지켜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걷기가 주는 기쁨과 자유로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아래 글에도 공감할 수 있겠지요.


만족을 모르는 강렬한 자유의 느낌.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다. 

저 산너머로 계속 걸어서 스페인을 넘고 싶은 미친 듯한 욕구를. 

나는 어제 페르페르튀즈 꼭대기에서 느꼈던 것을 이해한다. 

그토록 멀리서 오는 바람을 마시면서 나는 아프리카를 짐작했음을, 숨 쉬었음을,


책을 덮으니 걷고 싶네요. 

근처 공원이라도 걸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꿈이기도 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트레킹할 날이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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