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관에 담긴 한중일의 차 문화사

2018. 1. 14. 13:20책/일상을 위한 배움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편이라서 다관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값비싼 다관을 구입해서 즐기는 것은 아니구요.

평소에 사용하는 다관은 선물받은 것들이나 주변에서 준 것을 그냥 이용합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은 정동주의 [다관에 담긴 한중일의 차문화사(한길사, 2008)]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다관에 얽힌 역사가 궁금하기도 했던 참에 얼른 빌려왔습니다. 

표지에 등장하는 다관을 보면 맨 위가 명나라의 '청화호', 중간이 한국의 심산 김종훈의 '무유다관', 맨 아래가 일본의 '화조문 규스'입니다.


명대에 와서 코발트색 물감인 청화를 사용해서 밑그림을 그리고 그위에 맑은 유약을 입히는 기술이 널리 이용되었다고 하네요.

중국 도공들이 13세기후반에 남부 중국에서 투명한 유약 밑에 코발트색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개발하였답니다.

페르시아에서는 13세기에 이미 코발트색, 검은 색 그림을 투명한 유약 밑에 그리는 법이 널리 유행했다구요.

메소포타미아에는 9세기에 이미 코발트색 그림을 그리는 법이 알려졌다는군요.

비록 코발트색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명 도자공의 창작은 아니지만 그림기법, 그릇모양, 주제는 모두 독창적입니다.


김종훈 장인의 작품 '무유다관'에서는  질그릇 질감이 느껴집니다.

유약을 입히지 않은 사질토 한가지로 몸을 만들고 여러번 가마 속에서 구워 반발효차의 진맛을 잘 살려낸 다관이라고 합니다.

17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빈의 자사호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구요.


아카에긴란데 '화조문 규스'는 일본적 색채가 강합니다. 

붉은 색은 옻칠을 여러 겹으로 입혀 얻어내고 그 위에 순금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금박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카에'는 도자기에 붉은 빛을 주로 해서 그림을 그린 도자기입니다.

'긴란데'는 붉은 색 위에 금빛으로 그림을 그린 것을 말합니다.

'규스'는 모쿠베이(1767-1833)가 창안해낸 형식으로, 모쿠베이는  고리형식의 중국 손잡이를 벗어나기 위해 '차선'을 응용하기로 합니다.

'차선'은 찻가루와 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주는 도구입니다. 

차선 손잡이는 무사들의 칼 손잡이를 떠올리도록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모쿠베이는 차선의 대나무 마디가 있는 손잡이 부분을 차호 몸통에 꽂아넣은 듯 붙여 옆손잡이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도자기 규스가 탄생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규스 형식을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다관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리모양 손잡이가 아닌 몽둥이 모양 손잡이도 모두 규스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것이더군요.

우리 도자기가 명맥이 끊긴 가운데 1960년대 일본인들의 다관 주문에서 다시 차관련 도자기가 우리 땅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우리 다관에 규스 형식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겠지요.


우리 차문화가 암흑기에 이르기 전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다풍을 이어받아 익재 이제현의 선비차법의 역사를 이어갔고, 

사림학파 선비들이 정치적 격동기에 희생되면서 차문화는 쇠퇴했는데, 

19세기 들어와서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에 의해 쇠퇴한 차 문화가 다시 소생하기도 했으나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차문화는 다시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답니다. 


저자는 우리 나라의 차 도자기 장인으로 토우 김종희, 우송 김대희, 신현철, 심산 김종훈을 주목한다. 

일본 도자기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다 귀국한 김종희 선생은 일본의 규스를 본뜬 다관을 만들었는데, 

가야산의 흙과 유약으로만 된 회색 또는 흰색 재질의 평에 자루모양 손잡이를 단 다관을 만들었습니다. 

김대희는 실험과 실패를 거듭해서 도예입문 15년 만에 청자다관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청자, 백자, 분청에 도전합니다. 

신현철은 독창성과 종교성이 결합된 꽃모양 다관을 만듭니다. 

백련다관, 차꽃다관, 수련다관, 무궁화꽃다관, 해바라기꽃다관을 만들어나갑니다.

친숙함을 다관으로 표현하고 한 가지 유약으로 다채로운 색채효과를 얻어냅니다. 

김종훈은 모래성분이 많은 사질토를 이용해서 다관을 만들어왔습니다.

찰기가 부족해서 성형도 어려운 흙이지요. 

그는 자연상태의 흙을 이용해 다관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게다가 반발효차의 참맛을 내기 위해 한 가지 흙으로 몸을 만들고 유약을 전혀 입히지 않은 채 고온으로 구워낸 무유다관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김종훈은 수입 흙을 사용하는 오늘날, 한국의 모든 흙이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장인이랍니다.

신현철의 꽃모양 다관도 멋지지만, 김종훈의 실험정신이 만들어낸 무유다관, 정말 멋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사실 김종훈이 만들고자 하는 무유다관은 중국의 자사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중국 차문화사에서 '자사호'가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낸 차호인 자사호는 부족한 만큼 사람들이 더욱더 집착하게 된 것이지요.

녹차의 경우는 유약을 입힌 백자나 청자와 같은 차호가 차향을 흡수하지 않고 차색상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차그릇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명대 중엽이후 반발효차가 출현했는데, 차 맛이 진하고 깊어 청자나 백자와 같은 그릇보다는 자사호가 적당했습니다.

차를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차를 넣고 끓여도 너무 익지 않아서 시큼해지지 않으니까요.

당송 때 차인은 보이차를 좋아하지 않아 말차, 단차만을 선호했는데, 

보이차 만드는 방식이 조악해서 상층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의 고통스런 헌신이 없어도 좋은 차가 된다는 점에서 문인들이 보이차를 선호하게 되었다는군요.

자사호의 황금기는 명나라 후반.

반발효차를 제대로 마시기 위해 등장한 자사호. 

자사호의 일곱 특징.

1.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거나 불 위에 놓고 끓여도 차맛을 잃지 않는다.

2. 오래 차호를 사용할수록 빈 차호에 끊인 물만 넣어도 차맛이 난다.

3. 차호에 담아 마시던 차를 그대로 뚜껑을 덮고 둬도 곰팡이가 피지도 시큼해지지도 않는다.

4. 내열성이 좋다. 겨울철 물을 담아둬도 얼음이 얼지 않고 얼음을 녹이기 위해 불에 데워도 터지지 않는다.

5. 뜨거운 차호를 쥐어도 데지 않는다.

6. 차호를 오래 사용할수록 광택이 난다. 

7. 색깔이 다채로워 싫증이 나지 않는다.

철분함량이 높아 차그릇에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은 흙이 자사호로 되살아 났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말하는 좋은 다관이란 무엇인지 살펴조기로 하지요.

좋은 다관이란 차가 지닌 본래의 색, 맛, 기운을 제대로 살려내는 다관입니다. 

좋은 흙, 작가의 솜씨와 인품, 안목있는 차인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좋은 다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관은 두 생애를 삽니다. 첫번째 생애는 다관으로 태어날 때까지, 두번째 생애는 다관으로 사용될 때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차 한 잔 하고 싶어지네요. 



1 ···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