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30. 11:20ㆍ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어제도 저녁 5시경 하천가에 나가보았습니다. 기장을 챙겨서요.
비가 잦아들어서 외출하기 나쁘지 않더군요.
평소 다니던 하천가 산책길로 내려갔습니다.
걸을 수 있을 만큼 물이 빠졌습니다.
풀들이 누워서 아직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진흙탕이 된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오리집을 향했습니다.
여기서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어지는 산책길에 아직 완전히 물이 빠지지 않아서요.
하지만 돌아서 보니 전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물이 빠졌습니다.
(전날 포스팅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산책길은 진흙탕이 되었어도 다리밑 물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비가 많이 오질 않아 우산을 쓴 사람,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드디어 오리집 근처 돌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곳.
물이 많이 빠져서 돌다리의 형체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건너기에는 위험해보이네요.
돌다리를 건너지 않고 하천가 산책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리섬1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오리섬 1 앞에 새로운 섬이 생겼습니다.
비에 흙이 상류에서 실려와서 여기에다 섬을 만든 거지요.
오리섬1 부근은 물살이 세서 있기 힘들테고, 아래쪽 오리섬2, 4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질 못했고
그렇다면 오리섬3!
지난 번 장마때도 오리들은 여기도 피신했습니다.
앗! 오리들이 있습니다.
꼴이 영 말이 아니네요. 물에 흠뻑 젖어 털이 붙어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불쌍하고 ...
그런데 농3이 없습니다!!!
기장을 들고 온 우리를 알아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를 향해 오려고 하다가도 멈찟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친구랑 오리들에게 기장을 어떻게 주지 고민을 했습니다.
평소주던 바위는 물에 가라앉았고 ...할 수 없이 건너편 물가에서 기장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오리를 불러도 계속 머뭇거리네요.
결국 오리들이 큰 결심을 하고 물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향해 헤엄쳐 옵니다.
하지만 쉽게 물가로 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마침내 사람에 대한 공포심, 불안을 배고픔이 이긴 것 같네요.
오리들이 물가로 올라와 기장을 먹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급하게 먹어대는지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지금껏 본 가운데 제일 서둘러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너무 배고프다, 얼른 먹고 떠나야지, ...
그런 마음이 느껴지네요.
친구가 조그만 움직여도 움찔하면서 먹는 걸 중단하고 물 속으로 되돌아갈 태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망부석처럼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리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려구요.
완전히 흙탕물이네요.
오리들은 기장을 먹는 중간중간 물을 마시면서 먹는 현명함을 지녔습니다 .
기장은 농3의 몫까지 계산한 거라 어쩌면 너무 양이 많을 수도 있어 조금 염려가 됩니다.
오리들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기장을 알뜰하게 먹습니다.
밥을 먹는 모습이 보니 좀 안도가 되네요.
그런데... 농3은 어디로 간 걸까요?
근처에서 헤엄치고 있는 흰뺨검둥오리는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야생오리와 집오리는 참으로 다른 존재라는 느낌입니다.
오리들이 충분히 기장을 먹었는지 뭍으로 좀더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오리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멀찍이 더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비는 어떻게 피했고, 농3은 어떻게 된 건지...
오리들에게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런 대답도 없습니다.
오리들이 기장을 거의 다 챙겨먹은 모습을 보고 자리를 떴습니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농3이 근처 어딘가 있으려나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가 다리 위에 섰습니다.
멀리 오리섬3이 보입니다.
농3은 근처 어디에도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리섬1 주변에 새로이 생긴 섬에 왜가리가 머물러 있습니다.
오리들이 비가 멎으면 저 섬에도 머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사라진 농3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누군가 농3을 잡아갔을까?
아니면 갑작스런 비에 떠내려 갔을까?
떠내려갔다면 언제? 태풍 솔릭으로 비가 왔을 때, 아니면 이번에?
여러 의문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사라졌습니다.
만약 농3이 죽었다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비 때문이길...
집오리로 태어난 농3의 마지막이 사람에게 희생되는 시나리오가 싫어서요.
겨우 한걸음씩 야생오리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시나리오가 좀더 나아보입니다.
비에 떠내려갔다고 해도 하류 어딘가 농3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네요.
농3이 죽은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면 계속 이 마음을 고집할 것만 같아요.
농123시리즈가 끝이 나려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