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속에서도 봄은 오고 오리는 배고프고(하천오리 시리즈93)

2019. 3. 12. 18:43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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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연일 기승을 부리던 지난 주 월요일, 화요일에는 오리들을 살펴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야일이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도 했고, 미세먼지도 너무 심해서요.

수요일(3/6)이 되니까, 야일이가 회복해서 잘 지내는지도 궁금하고 해서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오리들 밥을 주러 가기로 했습니다.

오리 세 식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기오리 커플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밥을 주기로 하고 일단 걸음을 재촉했지요. 

평소 오리 세 식구에게 밥을 주는 곳에 도착하니 농원, 야일, 농투가 나란히 밥 주는 곳 근처 물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가 밥을 주러 오길 기다리는 걸까요?

어쩌면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이렇게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네요. 

친구를 기다리면서 오리들이 나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져서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농원이 뭍으로 올라와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농투도 뒤따라 올라와서 풀을 먹네요. 

그사이 풀이 제법 자라올랐습니다. 봄이 오긴 했나 봅니다.

야일이까지 합세해서 풀을 먹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배가 고프니 풀이라도 먹자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멀리 돌다리를 건너오는 친구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리들은 계속 풀 먹기에 바쁩니다.

친구가 가까이오자 제가 친구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오리들이 친구의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

오리들이 풀 먹기를 중단하고 환영하는 꽥꽥꽥을 외칩니다. 

얼마나 시끄럽게 우는지... 민망하네요.^^;

친구가 기장을 뿌려주는 동안 야일은 멀찌감치 있습니다. 

마치 아플 때처럼 자신만 따로 기장을 달라는 듯이 말이지요.

농투는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기장을 놓치지 않고 헤엄치면 찾아먹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농원과 야일이 나란히 입을 맞대고 기장을 먹습니다 .

농원의 텃세가 없어졌네요. 야일도 농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야일이 아프고 난 다음 농원이 야일을 완전한 식구로 받아준 것일까요?

아픈 야일이 안 되서 식구로 받아들인 걸까요?

농투가 다시 뭍으로 올라와서 풀을 먹다가 기장을 먹다가 합니다. 

야일도 회복되고 농원과  야일의 관계도 더 좋아지고... 좋은 날이네요.

비록 미세먼지 자욱한 날이지만요.

기장을 다 먹고 부족했는지 농투가 뭍으로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농투에 이어, 농원, 야일까지 뭍으로 따라올라와서 기다리네요. 

하지만 먹을 것을 더는 주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시 내려갑니다. 

앗! 농투가 다시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오솔길 근처까지 올라왔어요. 깜놀.

겁이 많아서 길가까지는 잘 올라오지 않는데... 신기하네요.

열심히 풀을 뜯어 먹는 농투. 

풀이 여기저기 많이 돋아나 있어 오리들이 풀을 먹을 수 있는 계절이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요!

식사가 끝난 오리들을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겨울을 벗지 못했지만 이미 봄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천가 풀의 파릇파릇한 녹색이 여기저기 눈에 띱니다. 

쑥도 냉이도... 겨울을 견뎌낸 풀들이 생명의 힘을 내보입니다. 

녹색 풀 덕분에 미세먼지로 며칠 동안 우울해졌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얼른 풀이 무성한 봄날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리들이 먹을 풀들이 더 풍성해지도록 말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유기오리 커플을 만나지 못해 먹이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날 하천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지나갔습니다. 

마스크 없이 걷고 있는 우리를 주목하는 느낌이었지요. 

그렇지 않아도 집에 돌아와서 목이 칼칼하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미세먼지를 무릅쓰고 오리들에게 밥을 주러 간 것은 잘 한 일이다 싶습니다. 

덕분에 오리들은 배가 고프지 않고 우리는 봄날의 녹색을 즐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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