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 오리들은 평화롭다(농123시리즈 23)

2018. 8. 23. 11:05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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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제주공항의 비행기는 태풍 솔릭 때문에 발이 묶인 상황.

하지만 우리동네는 어제 하루종일 찜통더위였습니다. 

저녁나절에도 쨍쨍 내리쬐는 햇살이 두려워 밖을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늦게, 저녁 6시 반이 넘어 집밖을 나왔습니다.

돌다리를 건너면서 오리들의 집쪽을 바라보는데 왜가리가 보입니다. 

그러면 오리들은 어디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밥을 주러 평소 가던 돌 위에 올라서면서 오리의 첫번째 집쪽을 보니까, 

백로와 오리들 세 마리가 보입니다. 

오리들이 흥분하며 꽥꽥꽥 울면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동안, 

백로는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기장을 나눠주기 시작할 때도 오리들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질 않고,

본격적으로 먹는 데 집중하면서 서서히 조용해집니다. 

농3이 제일 앞서 나와서 기장을 먹습니다. 

농3은 식탐이 많은 오리라고 말씀드렸지요.

농3은 적극적으로 먹기에 집중하거든요. 

농3이 농2 배 아래쪽의 기장을 공략합니다.

농3이 농2 뒤쪽으로 돌아 농1이 있는 쪽으로 이동합니다.

불안한데요. 먹는 일을 방해받는다 싶으면 농1이 예민하게 반응하거든요.

농3이 농1의 부리에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농3이 농1의 부리공격을 피해 뒤쪽으로 돌아가서 먹기를 계속합니다. 

농3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열심히 식사를 하지요.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오리들의 두번째 집에 서 있는 비둘기가 보입니다. 

잠시 비둘기를 바라보다 다시 오리들을 향해 시선을 옮기니 

어느사이 농3이 다시 왼쪽 앞으로 이동해서 기장을 먹고 있네요. 

정말 분주합니다.

농3, 좀더 왼편의 기장을 먹기 위해 고개를 왼편으로 틀었습니다. 

그러다 평소 기장을 주는 바위, 그리고 제가 서 있는 바위 사이에 흩어져 있는 기장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서 있으니, 선뜻 바위 사이를 들어오질 못하고 주저합니다.

그래서 제가 좀더 바위 가쪽으로 이동해서 농3의 불안을 줄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바위사이로 들어와 기장을 먹고 나갑니다.

농1도 농2도 경계심 때문에 쉽게 취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농3은 식탐 때문에  좀더 위험을 무릅쓰는 것 같네요.

농3이 바위 사이의 기장을 먹고 다시 다른 오리들 곁으로 돌아갑니다. 

농3의 통통하고 폭신한 엉덩이가 귀엽네요. 

다시 고개를 들어 좀전에 비둘기가 내려 앉았던 쪽을 보니

좀전에 오리집에서 날아갔던 것으로 보이는 백로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곳에서 백로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어려보이는 백로입니다.

백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참으로 우아한 움직임이지요. 

다시 백로에서 오리들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와중에 농3은 제가 서 있는 바위곁에 다시 와서 기장을 완전히 먹어치우고  

유유히 자리이동을 합니다. 

농3, 대단해~

오리들에게 태풍을 조심해서 잘 피해라, 태풍이 부는 동안은 오지 않을 거다 등등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오리는 그다지 우리말 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오직 현재의 기장먹기에 충실할 뿐.

참으로 현재에 집중하는 생명체군요. 

오리들에게 태풍소식을 제대로 알려줄 수 없어 우리들만 답답할 뿐입니다.

기장을 열심히 먹고 기운내서 태풍의 거센 비바람을 잘 견디라고 속으로 바래봅니다.

오늘이 농123에게 기장을 주는 마지막날이 아니길...

기장을 먹는 오리들을 바라보는 중에도 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립니다. 

오리들에게 밥을 주면서 이렇게 팥죽같은 땀을 흘린 적은 없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많습니다. 그 만큼 습기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곧 비가 쏟아져내길 것 같다 싶었습니다. 

밥을 먹는 오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서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먹구름이 마치 우리를 쫓아오는 듯합니다. 

우르르릉~ 천둥소리가 등을 떠밉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오질 않았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고 밤새도록 무더위로 뒤척이며 열대야를 보냈습니다. 

제주의 워싱턴 야자수 여러 그루가 태풍 솔릭의 위세가 꺾여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기예보의 비소식에도 지금껏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리들은 지금쯤 어쩌면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평스럽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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