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7. 17:03ㆍ영상/삶의고민
명절 연휴, 슬슬 좀 지루해지려할 즈음, 영화를 뒤적이다가 [마카담 스토리(Asphalte, 2015)]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순전히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 1953생)라는 프랑스 배우 때문에 보기로 결정했지요.
그녀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한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In Another Country, 2012)에도 나온 적 있답니다.
아무튼 이자벨 위페르 나오는 영화라면 놓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사무엘 벤쉬트리(Samuel Benchetrit, 1973년생) 감독의 [마카담 스토리]는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고 멋진 영화로 생각됩니다.
우선 이 감독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한데요,
프랑스 태생으로 영화연출만이 아니라 배우로도 활동하고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2016년에 그 유명한 바네사 파라디(Vanessa Paradis, 1972년생)와 재혼해 현재 남편이기도 하지요.
그가 만든 영화도 우리나라에 그리 소개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가장 최근 작품은 작년에 나온 [Dog]로 그의 5번째 영화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영화가 코미디 드라마인 만큼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들을 좀더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카담 스토리]는 우연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은 가난한 동네의 작은 아파트입니다. 만남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지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말썽이라서 엘리베이터를 수리하자는 주민들의 의견에 유일한 반대의견을 낸 2층에 사는 중년 독신남 스테른코비츠,
엄마와 단 둘이 사는 10대 소년 샬리,
맨 꼭대기층에 사는 알제리출신의 노년 여성 하미다.
이 세 사람은 각자 우연한 만남을 갖습니다.
스테른코비츠는 엘리베이트 수리비를 지불하지 않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곤란한 입장에 처합니다.
그는 주민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만 엘리베이터를 몰래 타고 밖에 나가서 근처 병원 자판기에서 감자칩, 생수 등을 사서 먹을거리를 마련하다가
새벽 1시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병원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이트 간호사를 알게 됩니다.
샬리는 맞은 편에 이사온 왕년의 여배우인 잔 메이어의 사소한 불편들을 해결해주고 안면을 터고
그녀의 집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 비데오를 매일 함께 봅니다.
하미다는 불시착한 우주 비행사를 집에 잠시 비밀리에 숨겨주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을 마치 아들 대하듯 친절하게 보살펴줍니다.
스테른코비츠가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속이고 나이트 간호사의 관심을 끌었지만 결국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면서 좀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삶에 희망이 없어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고 연기의 자신감도 상실했지만 과거에 집착하는 잔 메이어에게 샬리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줍니다.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우울하고 외로운 하미다는 비록 며칠이지만 우주 비행사 존 메켄지와 언어적 소통을 넘어 마음의 소통을 합니다.
희랍식 사랑의 구분을 빌자면, 에로스, 필리아, 크세니아가 우연한 만남을 통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낯선 만남이 어느덧 각자의 삶 속에 사랑을 가져오면서 행복으로 인도하는 이야기가 참으로 아름답고 훈훈합니다.
영화를 보는 중에 특히 우주비행사와 하미다가 미국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면서도 소통하는 대목은 정말 가장 웃기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코미디 영화, 게다가 오랜만에 본 프랑스 영화 덕분에 토요일 오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아... 그리고 영화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이상한 소리,
호랑이 울음소리인지 아기 울음소리인지 악령의 소리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이 내내 듣고 사는 그 울음소리의 정체가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그 정체가 뭐냐고요? 영화를 보시면 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