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감독의 [1987]

2017. 12. 28. 14:10영상/삶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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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그리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친구가 보러가자고 했으니 보러간 거지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는 될수록이면 보지 않는 편입니다. 

역사가 너무 처절해서요.

그런데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박종철의 죽음에서부터 이한열의 죽음까지, 그리고 직선제 쟁취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 사실은 그리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동안 확인했습니다)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적절한 픽션적 요소가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캐스팅이 돋보였습니다.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라는 허구적 인물이 영화 속으로 감정이입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는 이한열, 박종철의 진상을 밝히는 데 일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관 삼촌...

(실제로 교도관들의 역할이 컸다고 하는데, 바로 당시 교도관이었던 한재동과 전 교도관이었던 전병용이 바로 그 주인공이랍니다.

실제 이야기를 살펴보면, 한재동이 이부영의 편지를 전병용에게 전하고 전병용이 그 편지를 김정남씨에게 전했다고 하네요.) 

댤걀로 바위를 치는 듯한 이들과 도무지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연희도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느끼고 마침내는 공감하고 동조하기에 이르는 과정,

이 과정이 거부할 수 없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역사의 물결과 닿아 있습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강동원의 이한열도 볼 만하더군요.

실제 인물 박처원 전 치안감을 연기한 김윤식, 그의 멸공주의자 연기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었습니다.

역사가 제길을 가도록 일조한 실제 인물 최환 검사의 역할을 하정우가 멋지게 소화해 주었습니다. 

설경구가 연기한 김정남은 잘 알지 못한 인물이라서 궁금함이 컸습니다. 

찾아보니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김정남, 그가 쓴 책 [진실, 광장에 서다(창작과비평사, 2005))]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나중에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김정남이 박종철 물고문사건때 외압에 맞서 부검을 실현시킨 검사가 안상수가 아니라 최환이라고 진실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하더군요.)


영화 [1987]은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직선제를 쟁취한 승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고 위로를 건네고,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지금 당연히 누리는 것이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되짚어보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영화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87년 그 역사의 현장을 알지 못하는,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통해서 그 해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함께 공감하며 

슬퍼하고 분노하고 또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실제 87년 사진들이 차례로 나올 때 눈시울이 뜨거워져 자리에서 금방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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