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아픈가? (하천오리 시리즈89)

2019. 3. 2. 08:00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반응형

2월 마지막 날, 미세먼지가 지독히 자욱한 날이었지요. 

평소 유기오리 커플에게 먹이를 주는 돌밥상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 훨씬 상류쪽에서 유기오리 커플을 만났습니다. 

이 오리들은 영역이 넓어서 놀랄 일은 아니지만 마른 풀 위에서 몸단장을 하는 오리들에게 밥을 주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잠깐 오리들의 몸단장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리들 사이로 청둥오리 암컷의 얼굴이 보입니다. 

올 겨울 이 근처에서 지내던 청둥오리인데 아직 떠나지 않은 모습에 반가움이 컸습니다. 

며칠 사이에 녹색 풀들이 많아졌다 싶습니다. 

살그머니 봄이 다가오나 봅니다.

농원과 농투가 보입니다. 

양쪽에 흰뺨검둥오리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흰뺨검둥오리가 야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야일은 어디 있는 걸까요?

어쨌거나 농원과 농투가 부지런히 친구를 향해 달리듯 갑니다. 

그러고 보니 하천의 물이 너무 많이 빠졌습니다. 

진흙탕이 된 하천의 모습입니다. 

오리섬 3 주변에서 야일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친구가 야일을 부릅니다. 

야일이 화답하듯 꽥꽥하면서 천천히 헤엄쳐옵니다. 

농원과 농투가 열심히 기장을 먹는 동안 야일이 너무 천천히 헤엄쳐 오네요.

왜 이렇게 느리게 헤엄쳐 오는지... 배가 부른가 했습니다.

야일이 헤엄쳐 오다가 멈춥니다. 

왜 그러지?

일단 야일이 다가와서 기장을 먹어보려 시도합니다 .

그런데 먹는 둥 마는 둥 금방 자리를 뜹니다.

멀리 흰뺨 검둥오리가 보이네요. 

텃새인 흰뺨검둥오리들이 주변에 있어 한결 낫습니다. 

그런데 야일의 태도가 평소와 너무 다르네요. 

기장을 좋아하는데 거의 먹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기장을 먹고 난 다음에는 다른 것을 찾아서 먹곤 하는데 물 속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습니다. 

떨어져서 물 속에 자리를 잡고 앉네요. 무슨 일일까요?

농원과 농투는 부지런히 기장을 먹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해서 

또 홍합을 먹고, 

또 더 달라고 해서 누룽지까지 먹고...

그래도 배가 고픈 모습이라서 유기오리 커플에게 주려고 남겨둔 누룽지와 기장을 반쯤 건네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남김 없이 깨끗하게 먹는 오리들을 보니 정말 배가 고프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너무 말랐습니다. 요사이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원과 농투가 과식을 할 정도로 먹는 동안 야일은 물 속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한 번씩 발이 저리는지 발을 펴는 것을 제외하고 침묵한 채 앉아 있습니다. 

아픈 것일까요?

혹시 조류독감?

몸에 열이 나서 물 속에 앉아 있는 것일까 추측해보았습니다. 

아프다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야일이 아프다고 해도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것 외에 도와줄 것이 없네요.ㅠㅠ


농원과 농투도 말랐고 야일은 아픈 것 같으니 기장도 좀더 주고 야일도 살펴봐야겠다 싶었지요.

야일이 아픈 데도 우리가 부르는 소리에 답하면서 다가와 근처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정말 애처로왔습니다. 

야일이 밤을 잘 나길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데도 오리 세 식구를 남겨놓고 유기오리 커플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들 영역의 경계인 돌다리 근처에 있었습니다.  

평소 먹이를 주는 돌밥상까지는 너무 거리가 머니까, 돌다리 한 켠에 누룽지와 기장을 놓아주었습니다. 

먹기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잘 먹습니다. 

이 오리들도 배가 고프네요...

오리들에게는 춘궁기인가 봅니다. 보리고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자주 와서 밥을 줘야겠다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돌아와서도 야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야생이란 곳이 냉혹하니까, 견뎌내는 생명체는 살고 견뎌내지 못하면 죽는 곳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