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7. 12:40ㆍ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전날 늦은 오후의 세찬 소나기가 잠시 무더위를 꺾었지만 다음날인 일요일(8/4)에도 한낮의 무더위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를 오리들은 더 견디기가 쉽지 않겠지요.
이렇게 더운 날에는 반드시 오리들에게 밥을 주러 가자, 결심했으니, 밥을 주러 가긴 해야 하는데 언제 가야 할지...
저녁 6시에도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라서 오리들이 밥을 먹기에는 너무 더운 시간이고, 하지만 해가 기울면 오리들은 밥을 먹지 않으니...
요즘은 일몰시간이 7시 50분 정도라서 저녁 7시 반 정도가 밥 주기가 제일 적당한 시간일 것 같았습니다.
전날 우리집을 방문한 동생네 가족과 함께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오리밥을 주러 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어린 조카는 오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것 같았습니다.
한참 무더운 오후 4시 반에 조카는 '이제 덜 더운 것 같으니까 오리를 만나러 가자'며 조릅니다.
더울 때는 오리들이 밥을 먹으러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설득해 저녁 7시가 되기 전에 다함께 집에서 하천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천가에서도 축축한 무더위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큰다리1 아래 도착해서 조카에게 큰 소리로 "오리야~"하고 불러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오리들이 아무 반응이 없네요. 친구가 "오리야" 부르니까 그제서야 대답을 하고 나타납니다.
오리들이 정말 친구 목소리에만 반응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제가 오리들을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친구 목소리에만 반응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오리들이 평소처럼 꽥꽥 울며 뒤뚱뒤뚱 달려옵니다.
조카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오리를 만나러 오는 길에 흥분해서 깡총깡총 뛰며 "오리야~"하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던 조카가
오리들 앞에서는 우리가 주의를 준 대로 가만히 오리들을 지켜봅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나 태도에 민감한 오리들이라서 아이들이 까불까불하면서 다가가면 그냥 도망쳐버리는데...
친구 옆에서 가만히 오리를 지켜보는 조카는 피하질 않네요.
다리밑이 어두워서 플래시가 터져서 오리들을 더 찍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동생 가족이랑 오리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떠났습니다.
나중에 동생이 "오리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버려진 후 사람들에게 수시로 구걸하던 거지 오리 동번과 서번은 버림받은 티를 내면서 점점 더 초라해진다 싶었는데,
지금은 한참 깃털을 갈고 있는 터라 더 불쌍해 보입니다.
평소에 움직이길 싫어하는 데다 더위를 많이 타는 동생네 부부도 이날 만큼은 아이를 위해서 함께 산책길에 올라주었습니다.
동생부부는 힘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이날 사진은 대체로 잘 찍히질 않았고 플래시가 터지는 사진 찍기를 자제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무더위 때문에 사진 찍기도, 동영상 촬영도 힘들어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리섬1에 쉬던 오리들이 언제나 그렇듯 금방 우리의 출현을 알아챘습니다.
이번에도 조카는 오리들을 보기 위해 물가로 친구와 내려가서 오리들을 기다립니다.
동생 부부와 저는 하천 산책길에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오리 세 식구는 동번과 서번보다 우리를 덜 두려워해서 약간의 거리만 두면 신경쓰지 않고 밥을 잘 먹습니다.
조카와 친구는 가만히 선 채 제법 가까이서 오리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리들은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잡곡을 먹어보려고 다가온 청둥오리는 기웃거리면서 주변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동생이 피로해보여 우리는 오리들이 식사를 하도록 두고 일찍 자리를 떠났습니다.
조카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싶다고 해서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물에 젖어 있던 바위를 걷다가 처음으로 돌에 미끄러져 다리가 물 속에 빠졌습니다.
10년 이상을 걸어도 한 번도 미끄러진 적이 없던 징검다리에서 미끄러지다니! 신선한 경험이네요. ^^
돌아가는 길에는 해가 기울어 주변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하천가에서 우리 아파트 고양이로 보이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하천가에서 새 영역을 확보한 것인지...
큰다리 1 근처에 왔을 때 건너편에서 잠시 동번과 서번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리들이 섬에서 깃털을 고르고 있네요.
그런뎃 섬이 완전히 드러나질 않아 물이 찰랑거립니다.
깃털 고르기가 끝나면 아마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 편안한 저녁을 맞겠지요.
이 날 밤 집으로 돌아온 조카는 열심히 오리 그림을 그렸습니다.
내년 방학 때 조카가 다시 놀러 올 즈음에도 오리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잘 살아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조카도 이날 만난 오리들을 잘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살아 있는 오리의 털을 뽑아 값싼 오리털 패팅옷을 만드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조카는
"오리도 생명인데, 불쌍하다"고 하면서 "과학기술이 발달했는데 오리털 말고 다른 것으로 따뜻한 옷을 만들 수는 없나?"고 질문했던 것도
함께 기억하고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조카가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무더워서 힘들었지만 조카와 함께 오리들을 만나러 간 행복한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