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과 용서

2017. 4. 26. 11:28영상/삶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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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를 자세히 읽어보질 않고 판타지라는 분류때문에 덥썩 [오두막]을 보러 극장에 달려갔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제작진의 작품이라는 광고문구도 한 몫 한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이 영화는 바로 기독교인들이 즐겨하는 간증을 시각화, 동영상화한 것이더군요.

죽을 순간에 하느님을 만났다고 하는 그 무수한 간증들 말이지요.

언젠가 제 고등학교 동기도 저를 앉혀두고 자신이 자동차 사고를 겪는 순간 바로 곁에서 하느님을 느꼈다고 고백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하느님 덕분에 무사히 사고에서 목숨을 구했다구요.


이 영화도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맥이란 인물의 간증을 우리에게 대신 전해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트럭과의 사고에서 주인공 맥은 하느님을 만났고 천국을 엿보았고 죽은 막내딸을 만났고 그리고 이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선택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참된 기독교인으로 거듭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기독교인들의 사랑은 무엇이고 용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을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주인공인 맥은 막내딸이 유괴되어 무참하게 살해되고 그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범인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통스럽기는 맥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내딸 마시가 유괴된 데는 그 딸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었기에 아버지 맥은 그 아들을 구하러 달려갔습니다.

무사히 아들이 구조되는 순간 막내딸이 유괴된 겁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물에 빠지게 된 것은 둘째가 배 위 일어서 배의 균형이 깨어져서 배가 뒤집힌 때문이지요.

그래서 둘째는 자기 때문에 막내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스럽게 지냅니다.

게다가 맥은 아들을 구하는 순간 딸을 잃게 된 것이 모두 과거의 자기 죄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매질하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남몰래 살해한 때문이라는 거지요.

아무튼 딸을 잃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오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둘째 못지 않게 고통스럽긴 마찬가집니다. 

한 가족이 고통에 빠진 거지요.


이 가족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죄책감과 가족의 고통이 당연해보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는 이들이 죄책감에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치유시킵니다. 


기독교가 전하는 사랑과 용서는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고 구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이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그들의 행동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불완전한 사람은 악행을 하고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악행과 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역시 잘못을 저지른다. 

알고 보면 사람들의 잘못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죄를 평가(심판)해서는 안 되고 할 자격도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타인의 악행을 용서하면 잘못을 저지른 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자녀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 

인간의 죄 자체가 이미 스스로에게 내린 벌이기에 하느님이 악한 행동을 한 자들에게 또 다시 벌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비극적 죽음을 맞은 이도 영혼은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다.

고통받는 이는 곁에 하느님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자를 용서할 수 있다.


기독교의 사랑의 메시지는 분명해보입니다.

하느님은 악한 행동을 하는 이를 포함해 모든 이를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판단하고 심판해서는 안 되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잘못하는 인간 조차 그 행동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모든 인간을 다 알고 있는 듯 오만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 영화를 보고 일어나는 데, 우리 주변의 기독교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증오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이들이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참된 기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들의 증오야 말로 죄이고 악행이며 이들은 그 죄로 말미암아 이미 지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날이 왔으면 싶네요.

하느님은 모든 자녀를 사랑하시니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야말로 하느님을 눈물 흘리도록 하는 자가 아닐까요?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임이 분명해보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나 불교나 모두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진짜 세상은 사후의 세상인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악행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싶습니다.


덧붙이면, 이 영화 속에서 하느님은 흑인으로 여성으로 아시아인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열린 시선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느님을 백인남성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되돌아보라는 뜻이겠지요.

사실 신이야 백인도 흑인도 황인도 아닐테고, 여성도 남성도 아닐 테니까요.

인간이 생각하기 편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마련이겠죠.


본의 아니게 선택한 영화였지만 사랑과 용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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