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0. 13:11ㆍ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지난 8월22일, 오리 농3을 마지막으로 보고 난 후, 두 번 다시 농3을 보지 못했습니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후, 다시 하천오리들을 만나러 갔을 때 농3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 두 번 다시 농3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요.
벌써 4주가 흘렀네요.
행방불명된 농3의 소식을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어 정말로 답답했습니다.
농3이 행방불명되어 죽음을 확인할 수 없으니 농3이 하천 하류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랑 한 날 농3을 찾으러 가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하천 하류 철새도래지에서 다른 새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곧 상상일 뿐 현실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어떤 존재에게 공격을 받아 깃털깃을 잃고 목도 물려 목주변 털도 잃은 농2를 보면서 어떤 존재가 하천오리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농3을 노렸고, 그 다음이 농2, 마지막으로 농1을 공격하겠지요.
날지 못하는 새가 자연 속에서 생존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월요일 오전 짬을 내서 농3을 찾으러 길을 떠났습니다.
오리섬 1 근처에 도착했을 때 멀리 농1과 농2가 보였습니다.
오리섬에 오는 동안 친구는 오리들에게 주겠다며 참외꽃, 쥐손이풀를 뜯었고, 저는 달개비꽃을 땄습니다.
전날 기장을 남겼기에 오전에는 꽃이나 풀을 주면 좋겠다 싶었지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오리들도 먹을 수 있을테니, 그런 것들을 구해주자 싶었지요.
하천을 벗어나길 겁내는 오리들이니 하천에서 구하기 어려운 풀이나 꽃을 주면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리들이 생각보다 꽃이나 풀을 좋아하지 않네요.
참외꽃은 먹긴 하지만 쥐손이풀이나 냉이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뀌를 따서 던져주었습니다.
오리들이 우리의 정성을 생각해서 먹어준다는 태도로 보입니다.
오리들은 조금 우리가 주는 꽃을 먹어주더니 자리를 뜨네요.ㅠㅠ
뒤돌아가는 오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농3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학의천이 안양천과 만나는 쌍개울.
멀리 흰뺨 검둥오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비가 많이 온 후에 쌍개울에도 넓은 모래자갈밭이 생겼습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햇살이 찬란한 시간, 흰뺨 검둥오리들이 햇살 아래 느긋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농3을 찾아 떠날 길은 파란색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농3이 행방불명된 곳에서 철새도래지까지입니다.
철새도래지를 벗어나서 한강을 향해 더 멀리 가버렸다면 그 존재추적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지요.
풀밭 위에서 비둘기들이 한가로이 풀씨를 먹고 있습니다.
뭍에서 이렇게 풀씨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니 하천오리들의 처지가 슬퍼집니다.
조금 더 걸어내려가니 하천에서 백로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천의 백로가 아름다워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습니다.
아파트가 병풍을 이루고 넓은 하천에는 섬도 없어 날지 못하는 새가 머물기 어려운 곳입니다.
백로의 느린 움직임이 평화로와보입니다.
백로도 식사중인가 보네요.
조금 더 내려가니 작은 섬, 물 위로 솟아 있는 바위에서 쉬는 흰뺨검둥오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바위에서 농3이 홀로 지내기는 어려워보이네요.
철길고가도로가 있는 곳에 이르르니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새들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군요.
다리 밑에 백로가 있네요.
이 다리를 고치기 전에 다리 건너편에는 백로들이 떼를 지어 머물던 곳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리 밑에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보입니다.
희뺨검둥오리는 철새가 아니라 텃새라서 그 분포지역이 넓은 것 같습니다.
철길 고가도로 공사후 지형이 변해서 백로들이 서식지를 옮긴 것 같습니다.
백로 한 마리가 보일 뿐입니다.
안양교에 이르렀습니다.
쌍개울부터 안양교에 이르는 하천에서는 날지 못하는 오리가 홀로 지내기에는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리, 백로가 한 두 마리씩 떨어져 지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왜가리도 안 보이네요.
안양대교가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12시가 넘어가서 햇살이 따갑습니다.
초여름의 날씨 같았습니다.
돌들이 몰려 있는 하천 가운데에 백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여름 철새인 백로는 햇살을 즐기고 있을까요?
앞서 가던 친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하고 있어 가보니 달맞이꽃 씨앗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요즘 친구는 농2를 위해 몸에 좋은 풀, 꽃, 씨앗 등을 나름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터오리들이 돌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햇살에서 날개를 말리면서 쉬는 걸까요? 조는 걸까요?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햇살아래 식사에 바쁩니다.
햇살이 뜨거워서 하천을 건너 걷기로 했습니다.
박석교를 지나 잠시 주차장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물도 마시고 숨도 돌렸습니다.
거의 2시 가까운 시간이라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햇살이 너무 뜨거운지 비둘기들도 햇살이 없는 그늘 아래서 식사를 하고 있네요.
박달동 쪽의 작은 식당을 찾아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하천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멀리 하천 속 섬에 새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들, 그리고 왜가리가 어울려 있는 모습이 평화로와보입니다.
멀리 충훈 2교도 보입니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충훈1교를 지나쳐 버렸네요.
하천을 다시 건너 사구를 걸었습니다. 새들을 좀더 가까이 지켜보려고 구요.
여기서도 왜가리, 백로, 터오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낯선 새 한 마리가 멋지게 물위로 내려앉습니다.
왼편의 민물가마우지입니다.
왜가리는 짝짓기 할 때를 제외하고는 홀로 지낸다고 하지요.
왜가리의 고고한 모습이 멋집니다.
우리동네 하천에서는 볼 수 없는 민물가마우지의 출현이 반갑습니다.
왜가리, 가마우지, 백로가 각자 작은 바위 위에 꼿꼿이 서서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라서요.
백로는 흰 깃털 덕분에 다른 새들보다 더 우아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충훈2교가 뒤로 보이고 우리는 농3을 찾아 길을 계속 갑니다.
앞으로 충훈터널이 이어지는 충훈 대교가 나타날 것이고, 조금 더 가면 화창교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곳이 화창생태습지가 있는 곳이고 진행방향의 오른편에 이야기생태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왼편에는 광명이 있습니다.
박석교에서부터는 주변에 까마귀가 많네요.
까마귀가 도시로 영역을 넓히면서 높은 구조물 위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풀숲에 서 있는 백로가 보입니다. 안양의 끝자락을 향해가는 것 같습니다.
농3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깊어만 갑니다.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지만요.
안양천 건너편에 광명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하지만 하천 오른편의 안양시는 생태습지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화창생태습지는 하수를 고처리해서 만든 자연학습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판입니다.
화장실 연결로로 들어가면 '안양천 생태이야기관'이 나옵니다.
이 근처까지 오니 우리처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보기 어렵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만이 간간히 보입니다.
앗! 생태이야기관 문이 굳건히 닫혀 있네요!!
월요일이 휴무라는 안내판이 문 앞에 걸려 있습니다.
이야기 생태관의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니 김이 빠졌습니다.
생태관 밖에 앉아서 좀 숨을 돌리면서 우리의 여정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농3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그 어디에도 농3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결론만 얻었습니다.
농123를 유기한 사람이 유기장소를 나름 잘 선택했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유기된 오리가 살기에 하천은 그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버린 사람이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창교 직전에서 우리의 여정은 멈춰졌습니다.
화창교를 넘어 안양천교를 거쳐 호암대교(서울시 금천구 시흥동)까지 철새도래지가 하천 왼편, 서해안 고속도로 건너편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철새도래지에 가보지는 못했고 과연 그곳에 걸어 도달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생태이야기관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 걸어서 철새도래지를 가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태이야기관에서 좀 쉬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나 농3을 만나면 기장을 주기로 하고 기장을 챙기기로 했지만 집을 나설 때 기장을 챙기지는 않았습니다.
농3이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고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닐 농3을 찾아나선 것은 사실 농3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 행방불명된 농3이 죽었음을 받아들이고
유기오리 농3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이었습니다.
농3이 버려져 낯선 세상과 맞서 싸우다 떠났어도 누군가는 농3을 기억하고 있으니 그 삶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은 하천오리 둘도 언제 우리곁을 떠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이라도 함께 하려 합니다.
다음날, 다시 하천가에 가서 농1과 농2를 만나 기장을 주었습니다.
오리들은 맛나게 기장을 먹고 식사후 제가 따서 던져준 여뀌꽃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잘 지내!'라는 우리의 인사에 '꽥꽥!'하며 평소처럼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볼 일이 있어 하천가에 가지 못했습니다.
어제도 비가 내렸고,
오늘 오전도 비가 내리는 중입니다.
비록 비가 내려 오리들을 성가시게 했겠지만 오리들이 공격을 받지 않고 잘 지냈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녁에는 다시 하천가로 나가보려합니다.
비록 농3은 우리곁을 떠났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남은 하천오리들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