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들깨도 먹네! (하천오리 시리즈 109)

2019. 4. 12. 16:44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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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4/10). 비온 후 흐린 오후, 벚꽃과 개나리가 습기를 머금은 대기 때문인지 은은한 빛을 뿜습니다. 

하천가 보행자 산책길도 물기가 촉촉하네요.

오리 커플 동번과 서번이 밥돌 근처에 있었습니다. 

마침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지요. 

아이의 간식으로 보이는 조리퐁이었습니다.

아이는 오리가 조리퐁을 받아먹는 모습이 재밌는지 자신의 간식을 아낌없이 대부분 줘 버렸습니다. 

오리들은 여전히 배가 고픈지 자리를 뜨지 못하네요. 

이번에는 새우깡입니다.

아이의 또 다른 간식으로 보이는데... 아이는 오리들에게 새우깡 주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오리 사진찍기에 바쁩니다. 

우리는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오리들은 이날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했을 듯 싶지만 그래도 굶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사진 속 불그레한 빛방울이 어른거리는 모습이 신비롭네요.

확실히 하천가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녹색풀들도 많이 올라와서 제법 녹색 양탄자를 깐 듯한 모습입니다.

오리섬1 주변도 봄 풍경이 완연하구요. 

분홍색, 노란색, 녹색이 어우러져 곱습니다.

마침 오리들이 뭍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우리를 발견하고 빤히 지켜봅니다. 

농원이부터 차례로 오리들이 서둘러 물 속으로 들어가서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우리보다 더 일찍 밥주는 물가에 도착했네요. 

농원이 성큼성큼 뭍으로 걸어올라옵니다.

이어서 농투, 야일이까지 따라서 우리쪽으로 다가오네요. 

친구가 오리들을 물쪽으로 몰면서 잡곡을 물가에 뿌려줍니다. 

그런데 농투가 화들짝 놀라며 물로 도망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날 친구가 먹이를 줄 때 농투가 귀여워서 한 번 깃털을 쓰다듬어 보려고 했었는데요,

물론 농투가 재빨리 피해서 쓰다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 그 상황이 농투에게는 무척 무서운 것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친구가 또 자신을 만지려할까봐 지레 놀라서 도망친 거지요. 


역시 오리들은 포유동물이 아니라서 설사 자신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네요.

고양이나 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오리들이 식사에 집중하는 동안, 어느새 흰뺨검둥오리가 살금살금 물가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농원은 흰뺨검둥오리와 식사를 나눌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다다다다... 달려가서 흰뺨검둥오리를 위협하며 쫓습니다. 

친구는 농원의 이런 모습이 귀엽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자신의 먹이를 절대 양보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지키는 농원은 생존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으리라 생각됩니다. 

잡곡 먹는 속도가 기장 먹는 속도를 훨씬 능가합니다. 

빠르네요.

흰뺨검둥오리는 눈치를 보면서 조금 떨어져 오리 세 식구를 지켜봅니다.

농투와 농원이 아무래도 좀더 먹고 싶은가 보네요. 

뭍으로 올라왔어요.

야일도 물 속에서 머뭇거립니다.

이번에는 지난 겨울 거둔 들깨를 털지 않고 말려두었다가 이번에 줘보았습니다.

순전히 친구의 아이디어인데...

들깨가 영양이 많지 않겠냐며...

그런데 야일은 일찌감치 물가를 벗어나 깃털 고르기를 시작합니다. 

농투가 들깨를 한 입 먹어보더니 포기하고 물 속에서 빠뜨린 잡곡 없나 살펴봅니다. 

뒤에서 머뭇거리던 어린 흰뺨검둥오리가 뭍으로 올라와서 풀을 뜯어먹습니다.

농원과 농투는 들깨는 둔 채 잡곡찾기만 계속합니다.

앗! 마침내 농투가 본격적으로 들깨를 먹기 시작하네욧!!

들깨를 먹다 말고 헤엄을 칩니다. 

갯버들의 녹색잎이 많아졌습니다. 

농원과 농투가 다시 돌아옵니다.

농원까지도 들깨먹기에 동참합니다. 

농투만큼 열심히 먹지 않지만요.

항상 새로운 음식은 농투가 적극적으로 먼저 시도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식사를 끝낸 오리 세 식구의 모습이 평화로와보입니다.

하지만 멀리 하늘의 먹구름은 심상치 않네요.

돌아오는 길에 오리 커플이 하천 속 좁은 땅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오리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역시나 우리를 향해 부지런히 헤엄쳐오네요. 

분명 배가 아직도 고픈거지요.

앞서 주지 못한 잡곡을 밥돌에 올려놓아주었더니 잘 먹네요. 

동번(왼쪽)은 괜찮은데, 서번(오른쪽)의 꼴이 형편없어 보였습니다. 

서번은 동번에 비해 깃털색도 옅고 또 훨씬 초라한 모습입니다. 목을 보니 너무 말랐네요. 

아무래도 영양이 충분치 못한 모양입니다.


서번이 자꾸 눈에 밟혀서 다음날도 오리 커플에게 밥을 주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벚꽃이 아름답다고 해도 배가 고프면 소용없는 노릇이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요. 

배고픈 평화는 없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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