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3. 22:34ㆍ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기온이 낮 최고 34도에 육박하는 날이었습니다.
더워서 기운이 없을 지경이었지요. 오리들은 더워서 어찌 지내는지?
어쩌면 우리 하천에서 두 해째 여름을 맞는 집오리 농원과 농투는 여름 맞는 법을 조금은 터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좀전에 소나기가 내려서 오리들도 좀 시원했을 것 같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깜짝 놀라 깨어났을 수도 있겠네요.^^
지난 주 토요일(8/10), 에어컨, 선풍기로 인한 비염이 잘 낫질 않아서 컨디션이 별로였지만
무더위가 이어지고 전날 저녁 약속이 있어 오리들에게 가 보질 못해서 하천으로 몸을 끌고 나갔습니다.
해가 기우는 서쪽하늘이 구름과 햇살이 어우려져 멋진 광경을 연출했지만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늘의 격려라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전할 수 없어 아쉽네요.
이날은 오리들을 큰다리1을 지나 밥돌이 있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아니, 엄밀한 의미로 밥돌은 이제 경계석이 되어 버렸으니 밥돌이 있는 곳이라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는데,
더 나은 명칭을 아직 찾질 못했습니다.
아무튼 하천 가꾸는 아저씨들이 큰 돌을 모아 경계석으로 삼아서
밥돌로 삼기에 적당한 바위돌을 발견하지 못해서 어디다 오리들의 밥을 줘야 할지 고심하는 동안
동번과 서번은 안전거리를 두고 계속 웁니다.
결국 그나마 가장 납작한 돌에다 잡곡을 두었습니다. '밥돌2'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불만입니다.
이렇게 동번이 돌 위에 올라서면 돌이 너무 작아서 서번은 돌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아래서 잡곡을 먹어야 하지요.
동번과 서번의 꼴이 영 엉망이라 불쌍한 마음이 들어 조금 밥먹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해도
식사가 끝나면 우리를 따라올까봐 오리들을 두고 길을 재촉합니다.
오리섬2에서 오리 세 식구의 식사가 시작되고...
새끼 청둥오리 한 마리가 뒤늦게 물살을 타고 옵니다.
오리 세 식구의 잡곡식사시간이 이전과 달리 한층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청둥오리 자매가 근처에서 배회하니 다들 청둥오리 쫓으랴 식사하랴 분주합니다.
특히 농투는 경고하는 소리까지 냅니다. 아무래도 식사에 집중하기 어려워보입니다.
오리 세 식구끼리도 야일의 부리쪼기 때문에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식사를 해야 하는데,
천둥오리들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오가니...
천둥오리 자매는 오리 세 식구와 함께 잡곡 식사에 동참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청둥오리 자매에다 참새 똑똑이까지 잡곡 식사에 끼어들었으니...
참새가 날로 통통해지는 느낌입니다.
청둥오리 자매는 오리 세 식구가 한참 잡곡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끼어들기가 힘드니
계속해서 주위에서 맴돌면서 물도 먹고 먹이도 찾아먹고 자리도 바꿔가며 기다립니다.
스윅은 건너편까지 이동해 갔다가 날아오기도 하네요.
청둥오리 자매는 오리 세 식구의 눈치를 보면서 물로 뭍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잡곡먹기를 기다립니다.
청둥오리들도 기다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청둥오리들이 우리를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앞을 그냥 지나다니는 걸 보니까요.
오른 편 풀 속에 숨어 있다 잡곡을 향해 다가가니까 농투가 쫓고
왼편에서 살금살금 다가가니 야일이 쫓고...
청둥오리가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것은 틈을 봐서 잡곡을 먹으려는 것도 있겠지만
오리 세 식구를 성가시게 해서 빨리 식사를 끝내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벨은 될수록이면 멀리 이동하지 않고 근처에게 계속 오가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윅은 건너편까지 갔다 왔다 합니다. 이동거리가 많으니 기운이 더 빠질 것 같은데 말이지요.
농원이 잡곡 식사를 끝내고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고 스윅이 재빨리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이동합니다.
농원이 먼저 떠나고 야일까지 떠나니 농투 혼자 남았습니다.
청둥오리들이 점차 잡곡을 향해 가까이 다가옵니다.
농투가 신경이 쓰이니 다시 청둥오리들에게 "꽥꽥"하며 경고를 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청둥오리 두 마리를 대적하기 힘들다고 느꼈는지 맥 없이 피하고 맙니다.
야일은 아예 오리섬1로 이동해 버립니다.
청둥오리 자매의 잡곡식사도 그리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스윅은 벨의 눈치를 보면 식사를 하느라 힘이 듭니다 .
벨이 부리로 쫀 것도 아닌데 일찌감치 피하는 스윅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네요.
지레 벨에 대해 겁을 먹고 있는 스윅입니다.
농원이 물가의 식사도 끝을 내고 오리섬1로 건너가니까 농투도 덩달아 따라갑니다.
벨과 스윅이 남은 잡곡으로 식사를 하는 동안
야일과 농투는 오리섬 1에서 깃털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농원은 꼼짝않고 물가에 서 있네요... 계속 가만히 서 있는 농원의 모습이 신기합니다.
마치 명상 중인듯.
한참 망부석 모양 서 있던 농원이 물을 몇 모금 마십니다.
그리고는 다시 부동자세. 멍 때리는 걸까요?
야일도 농원 곁에서 물을 마십니다. 농투는 계속 깃털을 다듬습니다.
농원은 깃털도 정리하지 않고 그렇다고 앉아서 쉬지도 않고 한참동안 그냥 서 있었는데, 왜 그렇게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네요. 물어 볼 수도 없고...
오리도 홀로 생각에 잠길까요?
물론 명상 중이라면 아무 생각 없겠지만요. 무념무상의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