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0. 13:30ㆍ동네에서 만난 식물/하천가
시에서는 하천가의 유해식물을 없앤다면 매년 하천가의 풀을 자르거나 땅을 뒤엎는 등 갖은 노력을 해왔지만 그런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소위 유해식물은 날로 번성하기만 해요.
그런데 돼지풀이나 환삼덩굴은 아예 여름날 하천가를 초록숲으로 만들어둔 반면 며느리배꼽은 잘 보이질 않는다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산책길에 어린 며느리배꼽을 발견하고 반가웠습니다.
며느리배꼽은 마디풀과(Poygonaceae) 여뀌속(persicaria)의 한해살이입니다.
꽃은 녹색으로 짧은 이삭꽃차례인데 여름에 핍니다.
여뀌속의 식물이어서 그런지 이삭꽃차례네요.
9월로 접어드니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네요.
9월초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맺혀 녹색빛을 띱니다.
벌써 3년전 사진입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 하천에는 며느리배꼽이 창궐했었지요.
지금은 며느리배꽃이 그리 많이 눈에 띠지 않네요.
9월말로 접어드니 며느리배꼽의 열매가 알록달록해졌습니다.
열매는 녹색에서 붉은 색으로 마침내 푸르스름한 검은 빛으로 익어갑니다.
며느리 배꼽이 유해식물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잎과 줄기의 날카로운 가시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가시가 난 덩굴줄기가 뒤엉켜 있으면 뱀도 얼씬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밑씻개는 둘다 이름에 며느리를 품고 있습니다.
가시가 있어 접근하기 힘든 덩굴식물에 이런 이름을 붙여둔 것은 며느리에 대한 시어미의 미움을 드러내고 있어 섬찟하네요.
아무튼 며느리배꼽의 잎이 며느리밑씻개의 잎보다 넓적한 삼각형입니다.
줄기가 잎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마치 배꼽처럼 보여 며느리배꼽이라는 주었다는군요.
며느리배꼽이라는 이름보다는 북한의 '참가시덩굴여뀌'가 더 나아보입니다.
며느리밑씻개는 주로 농촌에서 며느리배꼽은 도시화가 된 땅에서 자란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 하천가에서 며느리밑씻개는 찾아볼 수 없는데, 며느리배꼽이 그토록 잘 자랐나봅니다.
며느리배꼽의 독특한 점 가운데 깔대기모양의 탁엽(턱잎)이 있다는 점입니다.
탁엽은 동그랗게 줄기를 감쌉니다.
덩굴식물의 턱잎은 덩굴손으로 발달해서 식물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가을날 하천가를 걷다가 포도송이같은 열매를 단 며느리배꼽을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진을 보니 정말 며느리배꼽이 하천가에서 번창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돼지풀, 한삼덩굴에 밀려서 제자리를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올가을에는 며느리배꼽의 열매를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사진으로 볼 수 있어 좋네요.
며느리배꼽이 가시때문에 유해식물로 미움을 받고 있지만 사실 며느리배꼽은 황폐한 땅을 덮어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고마운 풀입니다.
또 며느리배꼽은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의 경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지요.
하지만 도시인들은 자연의 영역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인간의 진로를 방해하는 며느리배꼽 같은 식물은 없애야 하는 유해식물일 뿐이지요.
우리 인간이 자연을 지나치게 개발하고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반성으로 이끄는 식물이 바로 며느리배꼽같은 식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산책길에 보니까 며느리배꼽이 조금씩 보이긴 했습니다.
며느리배꼽을 박멸하려는 시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