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 가족이 주는 상처

2017. 2. 5. 15:47영상/삶의고민

[단지 세상의 끝(Just la fin du monde)]를 보려고 벌써부터 생각했지만 짬이 나질 않아서 미루고 있다가 

더는 미루기 어려울 것 같아 극장을 찾았습니다.

Xavier Dolan감독의 이 작품은 참으로 연극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연극이 원작이라고 하네요. 

연극과 닮은 영화적 연출은 특별히 신선할 것도 없고 이런 식의 연출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인지 영화는 한 순간도 딴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몰입하게 만들었지요.

빛과 어둠의 대비라는 기술 역시 회화의 역사속에서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실내의 어둠과 실내에 들어오는 밖의 빛의 대비가 만드는 장면장면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싶었습니다. 

시각적인 것만 아니라, 영화 속 음악의 역할이 무척 특별하다 싶었지요.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자극한다고 할까요? 음악 때문에 영화가 더 특별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영화 답게 사람들 사이의 말 많음과 잠깐 동안의 침묵의 대비, 그 침묵 동안의 미묘한 표정변화도 인상적이었지요. 

영화의 스토리는 참으로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현실의 다소 과장된 표현 정도이지 비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사랑을 요구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지요.

루이와 앙투완의 관계처럼 형제간의 갈등 관계,

스완과 마르틴의 관계처럼 모녀간의 갈등 관계,

앙투완과 카트린의 관계같은 부부간의 갈등 관계...

이 갈등들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긴장감을 조장합니다.


결국 루이는 12년만에 자신이 죽어감을 알리기 위해 가족을 찾았지만 끝내 가족에게는 자신의 죽어감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지요.

비극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루이가 왜 12년동안 찾지 않았던 혈연가족을 죽기에 앞서 왜 찾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나라면 12년동안 보지 않은 가족이라면 죽게 되더라도 찾지 않았을 것예요.

그런데 루이는 왜 집을 찾은 것일까요?

결국 엄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죽기 전에 한 번 엄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또 루이는 12년동안 왜 한번도 잊지 않고 가족들 생일날 형식적이고 간략한 엽서를 보낸 걸까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자신이 이사간 집주소도 알려주지 않은 가족인데 말입니다.


사실 루이의 형과 루이의 여동생은 루이를 잘 알지 못하겠지요.

왜냐하면 루이가 22세때 집을 가출했기에 이후 12년 생활을 공유하지 못해서 그를 알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은 루이와의 관계란 과거의 흔적의 연장일 뿐입니다. 

과거의 상처는 고스란히 연장되었고 하지만 현재의 루이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습니다.

아무도 진지하게 루이의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성공에는 원본의 탄탄함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거기다 감독의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연출이 더 보탬이 되었을 겁니다.


정말 잘 만든 영화입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지만요.

대중적 평점이 나쁜 이유는 마음을 불편하게 있는 데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보기 드물게 잘 만든 영화인 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