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밥을 비둘기에게 빼앗기다니!(하천오리 시리즈 72)

2018. 12. 21. 21:41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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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바로 어제 오리들을 만나러 다녀왔지요. 

그런데 그 전 일요일에 오리들에게 밥을 주었으니 일주일만이었습니다. 

지난 12월 16일에는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리밥을 주러 갔었는데, 아주 기분이 상해서 돌아왔지요. 

이날은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오리들을 찾은 셈이었습니다. 

오리들은 편안하게 휴식중이었습니다. 농2만 우두커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지요. 

친구는 새까만 새처럼 옷을 입고 오리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요일에 내린 눈은 완전히 녹지 않아 주변 드문드문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평소 기장을 주는 장소에 친구가 도착하니 오리들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처럼 오리들은 서둘러 왔지요. 평소와 다름없이.

오리섬 5를 지나 오리들이 조금 속도를 늦춥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친구가 기장을 땅에 다 뿌리길 기다리는 거지요. 

기장을 모두 뿌린 후 친구가 조금 물러서면 오리들은 그제서야 다가와서 기장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비둘기가 등장한 것이!

비둘기는 오리들이 기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합니다. 

금방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에둘러 갑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서며 오리들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입니다. 

비둘기는 아마도 기장을 먹고 싶은 듯한데... 오리들의 눈치를 살피며 거리를 둔채 여기저기를 오가며 먹이를 먹는 척합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쉽사리 오리들 틈에 끼여서 기장을 먹을 엄두는 못내는 듯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회를 엿봅니다. 

오리 세 마리가 함께 기장을 먹으니 비둘기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구나,하고

이때만 해도 저는 비둘기가 오리들 기장을 넘보지 못하는 것에 좀 안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무척 집요한 새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지요. 

오리들이 한 차례 기장을 먹고 자리를 피우는 틈을 이용해서 비둘기가 기장을 먹을 기회를 획득합니다. 

이런... 저는 비둘기가 기장을 먹기 시작하니 속이 상했습니다. 오리들을 위해 준비한 식사니까요.

이때 친구가 오리들을 왼편에서 불렀습니다. 

누룽지를 주려구요. 

하지만 기장을 미처 다 먹지 못했는데 다른 쪽에서 누룽지를 준다면 비둘기가 저 기장을 다 먹어치울텐데...하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지요. 

그런데 상황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친구가 누룽지를 주는 사이 두 마리의 비둘기들이 더 날아와서 기장먹는 대열에 동참했거든요. 

뒤늦게 친구가 누룽지 주기를 멈추었고 

오리들이 다시 기장을 먹으러 달려왔지만 이미 비둘기들이 초스피드로 기장을 먹어치워 기장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오리들은 비둘기의 먹는 기세에 눌려 그 틈에 끼어 기장을 먹을 엄두도 내질 못했습니다. ㅠㅠ 

저는 화가 났지요. 

야1에게는 그토록 텃세를 하던 농1도 비둘기떼에게는 자기주장을 못하는 바보오리였을뿐. 

남은 누룽지도 더 주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유기오리 커플을 발견했습니다. 

하천 건너편 마른 풀더미 위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남은 누룽지는 이 유기오리들에게 주기로 했지요. 

일단 누룽지 작은 조각들은 돌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누룽지를 돌 위에 주고 물러섰더니 오리들이 잘 먹네요. 

평소 이렇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나마 이 오리들이라도 먹였으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오리밥을 훔쳐먹은 비둘기들에게 화가나고 

오리들이 기장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한 친구에게 화가 나고 

자기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바보오리들에게 화가 나고...

혼자서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당분간 오리들에게 기장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비둘기들이 3마리가 아니라 더 몰려오면 큰일이다 싶어서요. 

오리들에게 누룽지와 삶은 멸치만 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물에 던져주면 비둘기들이 훔쳐먹을 수는 없을테니까요,

물론 물 속에는 잉어들이 있어 경계해야겠지만요. 


비둘기에게 오리밥을 빼앗긴 우울한 일요일이었습니다. 

물론 겨울이니 비둘기들도 배가 고프겠지요.

배고픈 비둘기도 불쌍히 여길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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