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고(하천오리 시리즈 마지막회)

2019. 9. 17. 15:41동네하천에서 만난 새/집오리의 삶과 죽음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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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 농원이 심한 부상을 입어 걱정이 되서 추석날 오후 오리들을 찾아갔습니다.

농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큰다리1 근처에서 동번을 만났습니다. 

홀로 있는 모습이 안 됐습니다. 

친구가 잡곡을 주기에 적당한 돌이 없어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평평한 작은 돌 하나를 찾았지만 너무 길에 가까워서 동번이 쉬이 다가오려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4인 가족이 그곳에서 오리를 지켜보고 있어 동번이 가까이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가족들에게 조금 뒤로 물러나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꼬마가 뒤로 물러나기 동번이 잡곡을 향해 오긴 하지만... 잡곡을 향해 왔다갔다를 계속합니다. 

아무래도 서번이 사라지고 난 다음 혼자 지내는 중이라서 불안과 공포가 훨씬 커진 듯합니다. 

우리는 잡곡을 놓아두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오리섬1에 도착해서 농원의 상태부터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자마자 농원이 헤엄쳐 다가옵니다. 

하지만 농투는 배가 부른지 쉬이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네요. 

농원이 혼자만 물가로 와서 잡곡을 먹습니다. 

어제보다 한결 나아보입니다. 

붓기가 좀 빠져서 입을 다물 수도 있고 잡곡도 먹을 수가 있게 된 것이 안심이 되네요.

농투가 잡곡을 먹으러 오질 않으니까 농원이 혼자 먹다가 금방 농투 곁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오리섬1을 바라보니까 물이 아직 충분히 빠지지 않았습니다. 

가을장마의 여파로 하천물이 불어났습니다. 

금방 농원이 떠나가고 농투는 근처에 오지도 않으니 친구가 오리들을 다시 불러보려고 애써봅니다. 

오리들은 물을 먹으며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농원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지요. 



그런데... 추석날 만났던 농투의 모습이 우리가 만난 농투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농투는 추석날 다음날 토요일, 집오리 주인아저씨가 돌다리 근처에서 죽어 있는 것을 거둬서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목을 물려서 죽었다고 하네요. 

추석 전날 농원의 목이 할켰던 바로 그 동물이 농투를 죽인 동일한 동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원을 죽이는데 실패하고는 며칠 후 농투를 공격해서 성공한 거겠지요. 


농투의 죽음은 어제(9/16) 하천에 나갔을 때 개사료 할머니께 들었던 것입니다. 


이날 동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동번도 혹시 죽지나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어요.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동번의 모습이 보이질 않네요. 

오늘도 나가서 한 번 찾아볼까 싶습니다. 


동번을 못 찾아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농원과 농투를 만나러 왔는데... 보이질 않았습니다. 

마침 오리땅2에 개사료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개사료 할머니가 다녀가셔서 오리들이 배가 불러서 쉬고 있구나, 했었지요. 

그런데 마침 개사료 할머니가 지나가시다가 농투의 죽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농원이 머무는 곳을 알려주었지요. 

농원이 혼자 남았다는 사실에 할머니도 우리도 걱정스러웠습니다. 

농원의 주변에 야생오리 벨과 스윅 자매가 보였습니다. 

그동안 눈에 띠지 않더니...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주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개사료 할머니의 대화는 끝이 날줄 몰랐지요. 

그 대화 중 집오리 세 식구는 주인 아저씨가 닭을 이용해서 부화시킨 집오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원의 뺨은 부어 있었습니다. 농원은 홀로 물만 계속 마시고 있었습니다. 

홀로 된 농원이 정말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때 마침 휘파람 아주머니도 지나가시다가 농투의 죽음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어우러져 오리들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집오리 소유주가 더는 집오리를 이곳 하천에 풀어놓지 않길 원하다고 하셨고...

휘파람 아주머니는 농투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셨지요. 

농투가 도대체 왜, 어떤 존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무척 궁금해하였습니다. 


나는 농투를 죽인 동물은 근처 길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그럴리 없다고 하시면서 너구리가 아닐까 하셨습니다. 

휘파람 아주머니는 뱀일 수는 없나? 하셨지요.


할머니는 길고양이에 캣맘들이 먹이를 충분히 주기 때문에 오리를 죽일리 없다고 생각하셨지만...

배가 고프지 않은 고양이가 사냥놀이로 오리를 죽였을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농투를 완전히 먹어치우지 않고 목을 물어 죽이고는 그 사체를 남겨놓았다는 점에서요.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겠지요. 

휘파람 아주머니는 농원에 빵을 던져주고 싶어했지만 

개사료로 이미 너무 배가 부른 농원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고

청둥오리 벨과 스윅, 

그리고 흰뺨검둥오리가 와서 빵조각을 먹어치웠습니다. 

9월 들어서, 야일과 서번이 차례로 행방불명되고,

추석 전에 농원이 목을 물리고, 그리고 추석후 농투가 목을 물린 채 사체로 발견되고, 

그리고 동번의 모습도 보이질 않고...


만약 동번조차 행방불명이라면 우리 하천의 집오리는 농원이 한 마리만 남는 겁니다. 


부상당한 농원이 농투를 잃은 슬픔과 스트레스로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농원을 염려하며 수다를 떨던 덕맘들이 아무런 대책도 생각하지 못한 채 헤어질 때, 농원은 여전히 계속 물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백로 한 마리가 머물고 있었지요.  



이제 하천오리 시리즈도 끝이 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그 시기가 일찍 와서 속상합니다. 


하천에서 집오리가 1년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네요. 덕맘들의 도움이 있어도 말이지요. 

농삼이 6개월, 야일이 11개월, 동번과 서번이 12개월, 농투가 1년 6개월을 살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동번의 죽음은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긴 합니다.) 

앞으로 농원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하천오리 시리즈는 마무리하도록 할께요.

그동안 하천오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농원이 좀더 살아남는다면 농원의 소식은 가끔 부록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당분간 집오리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떠난 집오리들아...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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