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슬립], 위선자의 내적 변화를 그린 영화

2017. 4. 20. 12:41영상/삶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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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빌게 제일란 터키감독의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 2014)]은 우선 터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네요.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가고 싶지도 않았던 나라, 터키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도 이 아름다운 곳을 찾는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 나옵니다. 

멀리서 풍경을 잡아 사람들이 조그맣게 배경을 해치지 않는 차원에서 등장합니다.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실내로 들어오면 영화는 그림이 아니라 연극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딘의 글쓰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이딘과 여동생 네즐라와의 날선 대화, 

아내 니할의 방에서의 아이딘과 니할의 대화, 

가난한 세입자 함디네 집 실내에서의 아이딘의 아내 니할과 이맘 함디의 대화 또는 니할과 이맘의 형 이스마일 함디와의 대화,

아이딘의 친구 수아비의 집 실내에서의 수아비, 아이딘, 레벤트의 대화 등.

대화는 진지하게  벌어지는데, 마치 다큐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장작 196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네요. 

전직 배우였고 현재는 작가인 아이딘은 양심, 도덕, 정의 등을 이야기하지만 글이나 말처럼 삶이 양심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의롭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말뿐이라고 봐야 겠지요. 흔한 지식인의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딘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오셀로 호텔을 경영하고 세입자들에게서 세를 거둬서 부자로 삽니다.  

하지만 세입자의 형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변호사와 하인 히다예트에게 세를 걷는 일을 일임하면서 자신은 관여하지 않고 고고하게 살지요.

세입자와의 갈등은 직면하지 않습니다. 

세입자에 가해진 폭력도 자신은 책임이 없고 관심도 없는 듯 행동합니다.

항상 배려심깊은 사람인양 말하지만 행동은 비겁하고 위선적이예요.

영화는 위선적인 아이딘이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변화하려한다는 것에서 끝을 맺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공감하기가 어렵더군요.

그토록 긴 세월 위선적으로 살아온 사람이 나이가 들어 갑자기 변화하는 것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딘 같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바꿀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데 말이지요.

영화는 아나톨리아 평원의 야생마나 겨울 사냥에서 총맞아 죽는 토끼 등을 이용해서 아이딘의 심리적 변화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식의 우회적인 표현방식을 이용한 것이 아이딘의 심적 변화에 더 설득력을 주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오히려 세입자에 대한 태도라든가, 하인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직접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딘이 구체적으로 변화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데, 글쎄요...

저는 아이딘은 이후에도 자신이 살아온 방법대로 살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아내 니할은 여전히 남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잃고 그 공허감을 기부나 자선같은 행위로 채우려 할 것 같구요.

자기 정체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에게 대한 봉사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여성의 모습을 영화가 잘 그리긴 한 것 같습니다.

아이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철모르는 어린 시절 결혼해서 아이딘의 실체를 보고 그와의 결혼생활 속에서 피폐해지다 기부행위에서 출구를 찾는 니할을 비롯해

정의는 강자의 논리라며  강자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레벤트,

가난과 역경은 신의 뜻이니 맞서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농장주 수아비,

니할이 주는 돈을 불태우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이스마일,

남편에게 학대받아서 이혼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소위 배운 부자집 여성 네즐라 등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영화의 연극적이고 회화적인 느린 진행을 지루하지 않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비록 영화의 마지막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를 집중해서 보게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끈 부분은 바로 터키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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